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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운세] 2020년 06월 10일 띠별 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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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차효 작성일20-06-10 14:06 조회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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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띠]
시작만 있고 끝이 없으니 하는 일이 뜬구름 같다.

1948년생, 사소한 근심거리가 있으나 귀인의 도움을 받게 되어 해결될 수 있다.
1960년생, 소송이 있는 자는 여러 사람이 당신을 도와주니 좋은 결심이 있으리니 중간에 포기하지 마라.
1972년생, 귀하는 윗사람한테 안 좋은 인상을 주게 된다. 조심하라.
1984년생, 재정문제로 당분간 어려워진다.

[소띠]
아랫사람이나 주위 사람들과 거리감이 생겨 마음 편할 날이 없다.

1949년생, 아랫사람과 얘기할 때는 자세를 낮추고 경청한다면 자연 화합을 이룰 수 있으리라.
1961년생, 가끔 여행도 기분전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여행운은 길하다.
1973년생, 동쪽으로 떠나는 여행은 도중에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1985년생, 구설수에 오를 수 있으니 주의하라.

[범띠]
어려운 때를 만나 길을 잃고 방황 할 수 있겠다.

1950년생, 능력 있는 윗사람을 만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1962년생, 길을 나섰지만 길가엔 위험만이 도사리고 있으니 집에 있음이 좋으리라.
1974년생, 친구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1986년생, 변화에 뒤처질 수 있으니 항상 정보습득에 집중하라.

[토끼띠]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계획대로 움직이는 하루이다.

1951년생,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할 때이다.
1963년생, 분명한 판단이 서지 않는 일은 추진하지 않는 것이 좋다.
1975년생, 친구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으리라.
1987년생, 몸을 조심하라. 건강운이 길하지 못하다.

[용띠]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잘 이끌면 자신의 허물을 면할 수 있으리라.

1952년생,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1964년생, 윗사람의 도움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긴다.
1976년생, 뭉치면 산다. 귀사의 사원들의 단합이 필요한 시기이다.
1988년생, 시험이 있는 사람은 몸 관리에 철저히 하라.

[뱀띠]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의 교제를 시작하니 모든 사람이 나의 벗이요.

1953년생, 처음에는 다소 어려운 일도 있으나 주변의 도움으로 풀려 나간다.
1965년생, 여행을 떠나기에 좋은 시기이다.
1977년생,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1989년생, 사랑은 기대도 하지 생각도 못했던 곳에서 다가온다.

[말띠]
오늘은 꿈같은 시기이다. 움직이는 대로 얻는 것이 생긴다.

1954년생,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평안한 하루이다.
1966년생, 상하가 서로 화합하여 큰 그림을 그리게 되는 하루이다.
1978년생, 공로를 취하하는 자리라 의지가 솟구친다.
1990년생, 유흥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리라.

[양띠]
좋지 않은 시기라고 할 수가 있다.

1955년생, 모든 일에 조심하고 근신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하는 시기이다.
1967년생, 구설수에 오르기 쉬우니 경거망동을 삼가고 언행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리라.
1979년생,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1991년생, 의욕이 떨어지고 기운이 없다.

[원숭이띠]
매사가 귀로에 서서 갈등을 느끼게 되는 하루이다.

1956년생, 많은 이득을 얻으려는 욕심에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
1968년생, 순리에 맞는 행동을 하려하니 경제적 빈곤이 걱정된다.
1980년생, 올바르지 못한 생각은 멀리하는 것이 좋겠다.
1992년생, 가야만 되는 경우가 아니면 여행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닭띠]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가는데도 일이 잘 풀려 나간다.

1957년생, 될 수 있으면 남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일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좋다.
1969년생, 자녀로부터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1981년생, 일에 있어서 너무 급하게 나아가지는 말라.
1993년생, 사소한 것도 무심히 넘기지 말고 주의 깊게 관찰하라.

[개띠]
힘든 일을 당하다가도 우연한 기회에 행운을 얻게 되는 하루이다.

1958년생, 전화위복을 느끼게 되는 하루이다.
1970년생, 자신을 음해하는 자들이 있으니 각별한 주위가 요구된다.
1982년생, 바른 생각과 몸 관리에 유념하라.
1994년생, 몸이 상할 수 있으니 유혹과 외출에 주의하라.

[돼지띠]
자신의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게 되면 커다란 혜택을 보게 된다.

1959년생, 허황되게 갖지 못할 물건에 마음을 둔다.
1971년생, 자녀에게서 생각도 못했던 좋은 선물을 받는다.
1983년생,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생활을 바라지 않고 주어진 여건에서 소박한 행복을 꿈꾼다면 매우 길하겠다.
1995년생, 직장을 바꿀 생각이 있는 사람은 생각을 다시 하도록 해라.

제공=드림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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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풍경 - (32) 뤼시앵 크롤 ‘파시스트-메메’

선구적 주민 참여형 건축물 루뱅大 의학부 기숙사 ‘파시스트·메메’… “참여가 없으면 계획도 없다” 건축가 신념

‘헤매고 있는 기둥’을 우산대처럼 세워 불규칙하게 공간 배열… 규정된 아름다움 거부하고 불연속한 채 통합되는 모습 구체화


상황주의자들이 활동하던 1960년대는 근대의 모순이 분출하던 격동의 시기였다. 같은 시대에 벨기에의 건축가 뤼시앵 크롤(Lucien Kroll)은 사용자가 참여하는 건축설계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용자 참여 설계란 오늘날에는 많이 쓰는 말이지만 그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설계 태도였다. 그는 벨기에 브뤼셀 근교의 루뱅가톨릭대(Katholieke Universiteit Leuven)에 있는 두 동의 의학부 학생 기숙사를 설계했다. 1970년에 완성된 이 건물은 주민 참여형 수법의 선구적인 건축물이 됐다.

이 두 기숙사 중 작은 광장 정면에서 볼 때 왼쪽에 있는 것이 ‘파시스트(Fascist)’고, 오른쪽에 있는 것이 ‘메메(MeMe)’다. ‘파시스트’는 1인 1실의 기숙사로 다른 사람과 숙소를 공유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들이 산다고 장난기로 붙인 이름이고, ‘메메’는 ‘Maison Medicale’(의료인의 집)을 줄여 부르는 이름이다.

그런데 이 두 기숙사는 추상적인 근대식 아파트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마치 가건물 몇 채를 이어 놓은 것과 같은 무질서한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건축가는 보통 창이나 문을 규칙적으로 바르게 배열해 아름다운 건물의 외관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크롤은 이렇게 규정된 아름다움을 완전히 거부했다. 외관은 크기, 비례, 색깔이 다른 아스베스토, 벽돌, 유리, 철,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의 공업생산품과 자연 소재가 복잡하게 조합돼 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어디에 어떤 창과 문이 있는지 제대로 구별이 안 돼 완성도 안된 채 그냥 사용하는 건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건물의 표정은 이 기숙사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설계에 참여해서 얻은 다양한 생활의 표현이었다.

우리는 공공기관이나 건축가가 질문지로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주민 참여형 설계라고 한다. 게다가 사용자들은 나에게 편안하고 유용한 것을 요구하는 것을 참여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 스스로가 정작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일이 많고, 때로는 참여를 지나치게 요구하는 기회라고 잘못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것이 주민 참여형 설계에 속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건축에서 참여를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기숙사에 학생들이 참여하게 된 경위는 흥미롭다. 크롤이 학생 기숙사의 설계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은 그의 말에 의하면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결론” 때문이었다. 1968년에 일어난 프랑스 5월 혁명의 영향으로 벨기에에서도 학생운동이 활발했다. 이때 대학을 루뱅으로 이전하면서 의학부 기숙사 건축을 둘러싸고 대학과 학생들 사이에 격한 대립이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은 이전하는 새로운 대학 캠퍼스의 권위적인 마스터플랜과 경직된 건물에서 탈피해 자신들의 다양한 생활 형태를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은 기숙사에서 살 사람인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기숙사를 진부한 방식으로 설계하고 지으려고 했다. 학생들은 이런 대학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다며 자기들을 건축설계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학교 당국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개인의 차이를 형태로 보여주는 건축은 불연속한 채로 통합되는 사회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Lucien Kroll

그렇지만 이들이 요구한 것은 개인적인 편리함이나 이득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요구는 기숙사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주변의 주민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복합용도로 지어달라는 것, 그리고 계획안을 이웃 주민에게 설명하고 그 의견을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통 참여라 할 때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훨씬 건축적이고 도시적이며, 사회적으로도 진취적인 요구였다.

대학은 첫 번째 요구는 받아들였지만 두 번째 요구는 승인해 줄 수 없었다. 결국 대학과 학생들은 기숙사 설계를 담당할 건축가에게 양측의 의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긴다는 조건에 동의했다. 학생들은 대학이 지명한 건축가는 프로젝트를 대학이 원하는 대로 진행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해 자기들이 건축가를 정하겠다고 나섰고, 이에 대학은 믿을 만한 건축가 명단을 작성하고 그중에서 학생들에게 건축가를 뽑게 했다.

그중에서 크롤이 선정됐다. 크롤이 선택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이름이 리스트의 제일 밑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이 추천하는 상위 인물은 대학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고, 가장 맡기고 싶지 않은 사람을 제일 밑에 두었을 터이니, 제일 밑에 적힌 사람이 반대로 학생들의 의견을 잘 들어줄 거라고 생각해 뽑은 사람이 크롤이었다. 사실 그는 대학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크롤이 말했듯이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결론”으로 그는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됐다.

크롤은 늘 “도시를 진정한 의미에서 만들고 있는 것은 계획자가 아니라 주민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말은 이렇게 하면서 일은 이렇게 하지 않는 건축가도 많고, 듣고 보면 너무 당연해서 그저 흘려들으면 아무 말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주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시작했다. 크롤은 기숙사의 주민인 학생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하게 했고 또 그것을 진지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주중에는 현장에서, 주말에는 멀리 떨어진 사무소에서 워크숍을 열었다.

그는 학생들을 몇 그룹으로 나누고 그룹마다 평면 유형에 대한 프로그램을 작성하게 했다. 그런 다음에는 그들을 6개 팀으로 나눠 레스토랑, 숙소, 상점, 관리, 문화, 조경과 관련된 문제를 전담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이 시설을 사용하게 될 때 그들이 물리적으로나 경험상으로 기대하는 열망 등을 논의하게 했다. 이는 의대생들을 마치 건축학과 학생들 공부시키듯이 한 셈인데, 그가 생각한 참여는 이 정도였다. 그래서 크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메메’의 위치만이 아니라 성격까지 결정해 준 것은 바로 의대생들이었다.” 그러나 이 의대생들은 자기가 살 기숙사 설계에 참여하면서 의견을 내고 방법을 찾아가는 것을 마땅히 가져야 할 자신의 권리처럼 여겼다.

크롤은 학생과 도시 주민이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게 이 기숙사 건물에서 인공대지 밑 네 개의 레벨에는 사무실, 다목적실을 두고, 그 위 여덟 개의 레벨에는 서로 다른 타입의 주거를 뒀다. 기숙사란 호텔처럼 일정한 요금을 내고 이용하는 곳이 아니며, 기숙사의 방 하나하나가 다양한 가치관과 취미를 가진 학생들만의 사적인 공간이라는 점을 끝까지 소중하게 유지하고자 했다. 기숙사 ‘메메’에는 미혼 학생, 독신자, 공동생활자가 분명히 구분되지 않은 채, 각자의 생활방식을 인정하며 모여 살게 했다. 여기에서 개인실은 침실로 한정하고 공동공간을 강조해 몇 사람이 함께 사용하게 했다. 테라스 하우스 건물에는 아이가 있는 학생 부부들이 살고 있다. 상층부에는 음악이나 스포츠, 원예 등 이해를 공유하는 6∼8명이 공동으로 생활하게 했다. 천장 높이가 7m나 되는 방, 두 층에 걸친 방까지 실현한 것만 봐도 그가 학생들의 요구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를 알 수 있다.

건축가는 흔히 그러하듯 격자상으로 구조체를 배열하고 그 위에서 평면을 만들어간다. 그러나 크롤은 반대로 거주자의 생활 의지가 배어 나오도록 개성 있는 주거를 연결한 다음, 이런 공간을 기능하게 해주는 구조를 계획했다. 이때문에 기둥은 마치 우산대가 우산을 받치듯이 공간 한가운데를 지지하며 불규칙하게 배열돼 있다. 그래서 이렇게 생긴 기둥을 크롤은 “헤매고 있는 기둥(wandering columns)”이라고 불렀다.

천장 높이가 7m나 되는 방에서는 6∼8명이 공동생활을 한다. ⓒLucien Kroll

“다양성은 그 자체가 가치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다양성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다양성은 정적인 미의식을 부정한다.” 다양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사는 이가 살아가면서 마음대로 바꾸고 고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건축가는 용의주도하게 30㎝로 규정된 질서 위에서 개방형의 구조나 시스템을 설정했다. 먼저 골조만 만들어주고 세부적인 내장은 사는 사람이 들어와서 스스로 메워간다는 개념이 있는데, 그는 이런 ‘골조-충전 시스템(skeleton-infill system)’을 앞서서 보여줬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건축물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적 수단만은 아니었다. 그는 공업화 건축을 집합주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잘 인식하며, 이웃하는 주택의 형태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것을 전제로 한 수법으로 생각했다.

완성된 기숙사의 건물은 창의 크기나 형태가 제각각이고 색깔에도 통일감이 없어서 아마도 대학 당국은 이것을 보고 몹시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것은 프리패브로 공업화한 창문 카탈로그에서 학생들이 직접 선택하고 참여해 만든 것이다. 어떤 때는 트럼프에서 꺼낸 숫자를 보고 창문의 종류를 정하도록 했는데, 입면 패널이 정확한 시스템 위에 우연히 배열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누가 창이나 문을 바꿨다 해도 어디를 바꿨는지 알기 어려우며, 설사 창이나 문이 파손됐다 해도 이전과 똑같은 것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이점이 있다.

그렇다고 건축가가 이 기숙사를 우연한 놀이처럼 설계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크롤은 모든 것이 다 정해진 기숙사에 들어와 사는 학생들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일지라도 자신의 생활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계획에 참여해 각자 자기 생활의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파악하고 이를 건축가에게 전달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려면 공동생활 속에서 서로의 생활 스타일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학생들에게 요구했다. 건축가는 중립의 입장에서 각자의 요구를 듣고 해석하지만, 그렇다고 공동생활을 하면서도 한 개인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이를 수정하도록 요구했다. 이를 두고 크롤은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은 내가 그린 도면을 일일이 바꿨다.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가능한 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들으려 했다. 그랬더니 내 의견은 그다지 본질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나는 건축가로서 최종적인 형태를 결정해야 했다.”

크롤의 두 기숙사 건물 설계 과정은 곧 참여의 과정이었다. 그의 건축은 사람은 규칙적으로 할당된 곳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님을 가르친다. 건축 설계에 참여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자유 때문이다. 자유가 있으니 즐거움이 있고 즐거우니 의견도 내고 참여하려는 의욕을 갖게 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차이를 형태로 보여주는 기숙사 ‘파시스트-메메’는 전체가 불연속한 채로 통합되는 사회의 모습을 구체화한 것이다. “참여자가 없으면 계획도 없다(No participant, no plan).” 이 말은 크롤 자신의 금언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짓는 건축의 금언이 되기를 바란다.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 용어설명

상황주의(situationism) :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의 사회, 문화, 미술 분야에서 일어난 예술 운동. 일상성의 파괴를 주장하며 프랑스 ‘5월 혁명’과 1970년대 펑크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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